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일본원정 (문단 편집) === 일본 === 두 번이나 원나라 군을 물리치긴 했으나 일본 측의 피해도 적지 않은 편이었으며, 게다가 막부는 내부적으로 심각한 문제에 봉착했다. 바로 '''보상으로 무사들에게 내려줄 토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몽고습래회사를 제작한 타케자키 스에나가만 하더라도 1차 원나라 침공 당시에 선봉장으로 싸웠음에도 자신의 공을 막부로부터 인정받지 못해 자신의 말까지 팔아가면서 여비를 마련해 직접 가마쿠라로 가서 고케닌 아다치 야스모리를 만나 호소, 기어이 히고 가이도 향(海東鄕)의 지토 자리를 얻어냈다.] 이기긴 이겼으되 영토를 얻은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영토를 얻기위해 바다를 건너 고려를 공격해도 사실상 이길 리 만무했다. 당시 고려가 아무리 내부적으로 엉망이라고 해도 엄연히 대몽전쟁 30년을 치른 국가였고 원나라의 강요 때문이라지만 2만의 군대를 자비로 보낼 만큼 군사적 여력이 있었다.[* 고려가 제대로 망한 건 14세기 흑사병과 원나라의 경제파탄으로 인해 보유한 교초가 말 그대로 종이가 된 이후이며, 이 때는 일본도 무정부 상태여서 고려에 보복한다고 해봐야 왜구들이 수천명 단위로 상륙해서 약탈하는 정도였다. 일본이 후일의 [[임진왜란]]처럼 15만이 넘는 대군을 한번에 함선에 태워서 고려에 보낼 수 있다면 모를까, 그 정도가 아니라면 보복은 불가능했다.] 결국 자비를 들여 원군과 싸웠던 무사, 즉 고케닌들은 보상으로 아무 것도 받지 못해 갈수록 궁핍해졌고, 막부에 대한 불만이 커졌다. 이에 자동적으로 고케닌들에게서 쫓겨난 비(非)고케닌 무사들 및 총령(가문의 상속자)으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한 서자들이 [[악당]]을 조직해 슈고를 위협할 정도로 세력이 커졌다. 이것은 곧 가마쿠라 막부에 대한 위협이 되었다. 막부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을 무렵, 교토 조정에선 천황의 후계 문제를 두고 내분이 벌어졌고, 내전은 고다이고 덴노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고다이고 덴노]]가 막부 토벌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지자 막부는 고다이고 덴노를 외딴 곳으로 귀양을 보내버렸다. 하지만 호죠 정권의 장기독재에 반감을 품은 무사들, 특히 닛타 씨와 [[아시카가]] 씨가 호죠 타도를 노리고 있었다. 1333년 마침내 전국에서 호죠 정권 타도의 깃발이 올랐다. 같은 해 5월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교토를 함락시켰고, 닛타 요시사다가 가마쿠라를 공략했으며, 호죠 씨 일족은 마지막 싯켄 사다도키를 비롯해 전원 자결하여 '''가마쿠라 막부는 원나라 군을 막아낸 지 반세기도 못 채우고 멸망했다'''. 또한 이 시기의 일본에서는 원의 침략을 예상하고 경고한 승려가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창가학회]]의 기반이 되는 [[일련정종]](日蓮正宗)을 만든 니치렌(日蓮)이다. 그는 원 침공이 있기 10년 전부터 법화경 이외의 다른 경전을 사도(邪道)라며 부정했고, 당시 빈발하던 지진, 이상기후, 역병, 기근 등 재해의 원인이 사람들이 법화경을 믿지 않고 염불교나 선종, 정토종 따위의 사도를 믿는 데에 있으며, 이대로 그들을 내버려두었다간 국내에 조만간 큰 내란이 일어날 것이며, 외국으로부터의 침공이 있을 것이고, 정법인 법화경을 중심으로 세워야 국가와 국민 모두가 평안무사함을 얻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내용을 막부에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이라는 제목으로 올렸다가 다른 종파의 승려들에게 내몰려 귀양까지 갔다. 진짜 쳐들어온 원나라 침공이 아니었다면 그냥 좀 맛이 간 땡중1 정도로 취급받고 역사에서도 묻혀버렸을지 모를 이였지만 그가 입정안국론을 올리고 꼭 10년 뒤에 원의 침공이 두 차례나 벌어지면서, 정신나간 땡중에서 순식간에 예지를 지닌 고승대덕으로 격상되었다. 다만 원 침공이 실패로 끝난 이후에도 니치렌의 주장처럼 법화경 하나만을 정법이라 주장하는 니치렌종이 일본의 '국교'로 지정되는 일은 없었다. 여담으로 두 차례 일본 원정에서 항상 처음부터 두들겨 맞았던 대마도의 경우, 두 차례의 전쟁과 위의 가마쿠라 막부의 붕괴 덕분에 행정 체계가 마비되었고, 이는 차후 조선 초기까지 대마도가 왜구의 소굴이 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연구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